노을진 경기만

이문구 작가

#자연과생명 #도시와문명 #사회와현실 #불안과흔들림 #사실적묘사 #비판적통찰

근대화라는 거대한 파도는, 그 파도에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담보로 전진한다.

갯벌은 짭조름한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숨을 쉬었다. 그 검고 부드러운 살결 위로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터지고,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 짱뚱어를 쫓아 뛰놀았다. 대대로 경기만의 드넓은 갯벌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고, 그들의 고단한 삶을 말없이 끌어안아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았다.

그 한가운데, 눈을 번들거리며 서성이는 사내, 완칠이 있었다. 그는 갯벌의 숨소리보다 땅문서에 찍힐 도장 소리를 먼저 들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 우직하게 갯벌만 믿고 사는 이웃들의 어수룩함을 속으로 비웃으며, 그는 다가올 변화의 물결 위에서 자신의 몫을 건져 올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의 약삭빠름은 순박한 공동체 안에서 이질적인 욕망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어느 날, 그 고요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공장 굴뚝은 검은 숨을 토해내 하늘을 더럽혔고, 갯벌의 살을 파먹는 포클레인 소리가 밤낮으로 울렸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이 꿈틀대던 땅은 시커먼 썩은 물이 고이는 폐허로 변해갔다.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망연자실했지만, 완칠은 바로 그때가 기회라 믿었다.

그는 이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쳤다. 외지에서 온 개발업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어수룩한 이웃들의 등을 떠밀어 헐값에 땅을 넘기도록 부추겼다. 한몫 단단히 챙겨 이 잿빛 땅을 뜨고 싶다는 욕망은, 그의 눈빛을 더욱 탐욕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사라져가는 세계에 대한 연민보다, 그 폐허 위에서 솟아날 자신의 미래를 더 믿었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톱니바퀴 앞에서 한 개인의 잔꾀는 한낱 모래알에 불과했다. 완칠은 실컷 이용만 당한 채 빈손으로 내팽개쳐졌다. 서로를 믿었던 공동체는 돈 몇 푼에 갈가리 찢겨 원수처럼 등을 돌렸고, 그의 발밑에는 오도 가도 못할 절망만이 질척하게 남았다.

결국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잿빛으로 죽어가는 바다 위로, 그날도 어김없이 붉은 노을이 피처럼 번지고 있었다. 한때 풍요의 상징이었던 그 노을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리는 거대한 조종(弔鐘)처럼 처연하게 울렸다.

이문구 작가는 이 모든 비극을 해학과 비애가 뒤섞인 구수한 입담으로 그려내며,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과연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발전이었는지 씁쓸하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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