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이호철
#혁명직후 #지식인의고뇌 #무기력과방황 #부조리와소외 #씁쓸하고현실적임 #시대의자화상
"혁명의 거대한 함성은 지나갔지만, 세상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우리는 그저 떠들 뿐이었다." 이호철의 『소시민』은 4.19 혁명 직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지식인들의 공허한 초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혁명은 성공했지만, 주인공 '나'와 그의 친구들 '형', '혁', '숙'의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직업이 없으며, 허름한 선술집과 셋방을 전전하며 시간을 죽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관념과, 세상을 향한 냉소적인 말들뿐입니다.
그들의 일상은 끝없는 대화로 채워집니다. 혁명의 의의와 변질, 정치의 부패,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지만, 그들의 말은 언제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비판하지만, 정작 그 세상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력함에는 침묵합니다. 그들의 대화는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지적 유희이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을 감추기 위한 방어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려 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시도는 어설픈 몸짓으로 끝나버립니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그들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서로의 처지를 비웃고, 세상을 조롱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뿐이었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관계마저 희미해집니다. 함께 분노하고 토론하던 그들의 모임은 점차 의미를 잃고, 각자의 무력감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갑니다. 혁명이 남긴 것은 희망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소시민들의 깊은 방향 상실감과 환멸이었습니다.
『소시민』은 거대한 역사의 전환기에, 이상은 높았으나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해야 했던 무력한 지식인의 자화상입니다. 이 작품은 행동하지 않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그리고 혁명 이후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된 이들의 쓸쓸한 풍경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그들의 끝없는 수다는,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우리 모두의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독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해당 작품(소시민)은 저작권 보호 대상 작품입니다. 전체 내용은 온라인 서점 또는 전자도서 플랫폼에서 구매 및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