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
황순원
#이념과인간 #격동의역사 #사랑과희생 #계급갈등 #비극적이고장엄함 #상징과은유
“한 땅에 핏줄처럼 얽혀 살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지주와 소작농이 되었다면.”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는 이 서늘한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념의 광기가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비극적인 증언입니다.
해방 직후,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의 한 마을. 지주 집안의 아들인 '박훈'은 도쿄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해방의 기쁨이 아닌, 살벌한 계급투쟁의 소용돌이였습니다. 세상은 뒤집혔고, 어제의 지주는 오늘의 인민재판대에 서는 '반동분자'가 되었습니다.
훈의 집에서 일하던 마름의 아들 '도섭'은 이제 완장을 차고 농민위원회의 핵심 인물이 되어, 과거의 주인을 향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훈은 인간적인 도리를 믿는 나약한 인텔리지만, 도섭은 이념의 이름 아래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새로운 시대의 야만이었습니다.
이 두 남자 사이에는 '오작녀'라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본래 훈을 흠모했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도섭과 강제로 혼인한 비운의 여인입니다. 남편의 짐승 같은 폭력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은 오직 훈을 향한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이념이 갈라놓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마지막 순수를 상징합니다.
마을에서는 연일 인민재판이 열리고, 지주들은 숙청의 피바람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훈 또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지만, 무력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집니다.
훈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날 밤, 오작녀는 비장한 결심을 합니다. 그녀는 훈을 죽이러 가려는 남편 도섭을, 자신의 손으로 먼저 살해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가장 끔찍하고도 가장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오작녀는 피 묻은 손으로 훈에게 어서 남쪽으로 도망치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는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훈은 그녀의 희생을 등에 업고, 핏빛 새벽 속에서 홀로 38선을 넘습니다. 그의 구원은 결국 또 다른 이의 죄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카인의 후예'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이웃이 이웃을 죽이는) 인류의 원죄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는 이념의 폭력 앞에서, 나약하지만 끝까지 지켜져야 할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오작녀의 비극적인 사랑은, 그 어떤 거대한 이념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마지막 불꽃으로 남아 우리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깁니다.
※ 해당 작품(카인의 후예)은 저작권 보호 대상 작품입니다. 전체 내용은 온라인 서점 또는 전자도서 플랫폼에서 구매 및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