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
시내암, 나관중
#정의와불의 #영웅과호걸 #부조리한사회 #의리와배신 #장대하고서사적임 #비극적이고장엄함
관리가 썩고 세상이 어지러우니, 의로운 영웅들은 어쩔 수 없이 칼을 들고 산으로 향했다." 『수호전』은 나라가 버린 영웅들의 슬프고도 장엄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때는 북송 시대, 조정은 부패한 관리들로 가득 차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갑니다. 이러한 혼란한 세상 속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108명의 호걸들이 하나둘씩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금군 교두였던 '표자두 임충'은 고위 관리의 음모에 빠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은 형의 원수를 갚고 살인자가 됩니다. 힘없는 백성을 돕다가 사고로 사람을 죽인 '화화상 노지심'도 있었죠. 그들은 장군, 관리, 어부, 사냥꾼 등 신분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부조리한 세상에 의해 의로운 분노를 품게 된 '어쩔 수 없는 도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종착지는 '양산박'이었습니다. 갈대 무성한 거대한 소택지에 자리 잡은 양산박은 부패한 관리가 없는,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이자 정의의 요새였습니다.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替天行道)"는 깃발 아래, 인의와 덕망으로 모두를 이끄는 '급시우 송강'을 중심으로 108명의 호걸들은 의형제를 맺고 거대한 군대를 이룹니다.
양산박의 군대는 썩어빠진 관리들을 혼내주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의적 활동을 펼칩니다. 조정에서 보낸 토벌군을 연이어 격파하며 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양산박은 핍박받는 백성들에게 유일한 희망의 상징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장인 송강의 마음속에는 늘 황제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의 관리로 인정받고 싶다는 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조정에서 그들의 힘을 꺾는 대신 회유책으로 '초안(招安)', 즉 귀순을 제안하자, 송강은 오랜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입니다. 양산박은 이제 나라의 역적이 아닌, 황제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조정의 도구가 된 양산박 호걸들은 이제 다른 반란군들을 토벌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내몰립니다. 방랍의 난과 같은 끔찍한 전투 속에서, 함께 생사를 넘나들던 108명의 의형제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갑니다.
마침내 모든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왔을 때, 양산박의 영웅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이들마저도 그들의 공을 시기한 간신들의 계략에 빠져 독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세우고자 했던 그들의 위대한 왕국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수호전』은 통쾌한 영웅들의 활약담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시스템의 모순과 개인의 이상이 충돌할 때 어떤 비극이 생겨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비록 그들의 왕국은 무너졌지만, 불의한 세상에 맞서 의를 외쳤던 108호걸의 이름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전설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