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남염부주지) 심판과 기억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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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치가 어지럽다면, 저승의 법도는 과연 올바른가?" 『금오신화』의 네 번째 이야기, 「남염부주지」는 한 강직한 선비가 꿈속에서 염라대왕과 만나 세상의 정의를 논하는, 가장 철학적이고 대담한 상상의 기록입니다.
경주에 사는 '박생'이라는 선비는 유학의 도리를 굳게 믿는 올곧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귀신이나 저승과 같은 허황된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오직 이성적인 학문만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세상의 부조리와 미신에 분개한 그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귀신론'을 짓기에 이릅니다.
그날 밤, 박생은 깊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저승사자를 만납니다.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남염부주'라는 기이한 세계. 그곳의 왕은 바로 우리가 아는 염라대왕이었습니다. 보통의 죄인이라면 벌벌 떨며 심판을 기다렸겠지만, 박생은 달랐습니다.
그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염라대왕과 마주 앉아 토론을 시작합니다. 우주의 생성 원리부터 시작해, 유교와 불교의 가르침, 올바른 정치와 나라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박생은 자신의 굳건한 유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논하며 염라대왕과 지적으로 겨룹니다.
염라대왕은 박생의 깊은 학문과 강직한 기개에 크게 감탄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사실 남염부주는 부패하고 어지러웠으며, 자신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이곳을 바로잡기 위해 임시로 왕위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박생이야말로 이 세계를 다스릴 진정한 적임자라고 말합니다.
염라대왕은 박생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하고, 박생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 박생은 깊은 꿈에서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합니다. 며칠 뒤, 박생은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목욕재계한 뒤, 조용히 방에 누워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인간 세상을 떠나,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남염부주의 새로운 왕이 되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남염부주지」는 부조리한 현실에 좌절한 한 지식인의 꿈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는 펼칠 수 없었던 그의 정의로운 이상이, 죽음 너머의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 철학으로 인정받는 통쾌한 상상. 이는 작가 김시습이 꿈꾸었던, 올곧은 선비의 정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상 사회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담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