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이생규장전) 운명, 그 하루
김시습
#초월적사랑 #삶과죽음 #전쟁의비극 #운명과인연 #애절하고아련함 #슬프고무거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사랑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리." 『금오신화』에 실린 「이생규장전」은 난세의 비극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연인의 맹세를 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개성 선죽교 근처에 살던 '이생'이라는 젊은이는 어느 날 우연히 담장 너머를 엿보다 아름다운 최씨 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최씨 처녀 또한 이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두 사람은 부모님 몰래 사랑의 시를 주고받으며 깊은 인연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곧 발각되고, 이생은 아버지의 꾸지람에 집에서 쫓겨나듯 멀리 떠나게 됩니다.
딸이 상사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최씨 처녀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이생과 최랑은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생은 과거에도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며, 두 사람의 앞날은 밝게 빛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홍건적이 침입하여 온 나라가 끔찍한 전화에 휩싸이고, 피난을 가던 중 최랑은 도적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홀로 살아남은 이생은 폐허가 된 옛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밤낮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죽었던 최랑이 환신이 되어 이생 앞에 나타납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이생은 놀라움과 기쁨 속에서 그녀를 맞이하고 두 사람은 못다 한 사랑을 나누며 다시 행복한 3년을 보냅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결국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최랑은 눈물을 흘리며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다시 혼자가 된 이생은 아내의 유골을 찾아 묻어준 뒤, 그녀와의 추억을 안고 시름시름 앓다가 몇 달 만에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이생규장전」은 전쟁이라는 가혹한 현실이 앗아간 행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경계마저 뛰어넘으려 했던 두 연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극으로 끝났기에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이 이야기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사랑의 맹세는 영원할 수 있다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