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사랑의 저편
김시습
#초월적사랑 #삶과죽음 #환상과기이함 #애절하고아련함 #쓸쓸하고외로움 #상징과은유
외로움이 사무칠 때, 간절한 마음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물어 버린다." 『금오신화』의 첫 번째 이야기, 「만복사저포기」는 한 남자의 지극한 외로움이 불러온 기적 같고 꿈같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전라도 남원, 만복사라는 절에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홀로 살아가는 '양생'이라는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봄날의 화창한 풍경도 그의 마음에겐 그저 쓸쓸함을 더할 뿐이었죠. 그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저포놀이 내기를 청합니다. "제가 이기면, 아름다운 배필을 내려 주십시오."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걸까요, 양생은 내기에서 이기고 부처님 뒤에 숨어 인연을 기다립니다.
그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며 좋은 인연을 기원합니다. 양생은 운명처럼 그녀에게 다가갔고,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려 시를 주고받으며 하룻밤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눕니다. 여인의 집에서 꿈같은 며칠을 보낸 후, 양생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약속한 날, 양생은 여인이 알려준 절 앞에서 그녀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것은 그녀가 아닌, 딸의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한 노부부였습니다. 그들이 내민 은그릇은 바로 여인이 양생에게 주었던 것이었고, 그제야 양생은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왜구의 난 때 목숨을 잃은 처녀의 혼령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실을 알았지만 양생의 사랑은 변치 않았습니다. 그는 여인의 환생을 도와 제사에 참석하고, 그녀와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습니다. 여인은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안타까운 이별을 고하고, 훗날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당신도 불도를 닦아 윤회의 업에서 벗어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녀를 떠나보낸 양생은 평생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인이 남긴 재산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어준 뒤, 속세를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다가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만복사저포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죽음마저 갈라놓을 수 없었던 그들의 짧고 강렬한 사랑은, 진정한 인연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쓸쓸하고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